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vol.6

  


미니스트는 여성인권주의자로 해석할 수가 없다. 과거 그것도 먼 과거에는 그 의미가 맞을 지 모르겠으나, 현재에 와서 그 의미 해석을 한다면 '여성우월주의자' 또는 '피해망상주의자' 등으로 본다면 맞을 것이다. 


 그 또는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는 없다. 논리로 이들을 접근하면 이길 수가 없다. 처음부터 논리를 바탕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판단에 A라고 생각하면 그냥 A인 것이다. 아무리 바른 소리를 한다하여도 생각을 달리하게 할 수가 없다. 이는 어떻게 보면 근시대적으로 여성으로서 받은 피해를 모두 자신들의 것인마냥 해석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그러지 않는 상황도 과거에 빗대어 지금까지 이렇게 왔으니 자신들이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들이 받아온 것도 아닌 피해상황들을 망상에 가까운 태도를 취한다. 


 이들의 모임은 매우 빈약하다. 그러나 거대하다. 그래서 섣부른 반대를 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행동이 옳기 때문에 반대가 없는 줄 안다. 물론 반대 의견이 있다해도 그들에게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간혹 자신들에게 반감을 서는 인물이 있다면 때거지로 몰려와 인격모독부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그들 모임에 구성체들은 대단히도 빈약하다. 무리의 행동이었으나, 개개인들의 문제를 삼아 법적태도를 보이면 곧바로 사과 또는 꼬리를 내린다. 하지만 이 행동이 취해지는 과정도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겉으로는 사과의 모습을 보이지만 그들의 무리 안에서의 대화에서는 전혀 그런 태도를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이를 넘기고 다시 터무니 없는 공격을 준비하려고 한다. 


 그들이 근거와 논리를 무시한 공격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그들이 여전히 약자라고 여겨지고 있으며, 법적으로 그들의 행동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성(性)과 관련된 사항은 여성이 약자로서 인식되기에 법적으로 여성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어야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악한 생각으로 남성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 사실무근의 죄를 묻는 여성에게도 그와 상당한 죄를 다시 물을 수가 있어야 한다. 법이 무섭지 않으면 그들은 법위에 사는 무리가 될 수 있다. 반사회적 행동을 계속 취하는 그들에게 법적으로 철퇴를 내릴 수 있는 방안이 시급하다.  어떠한 주제에 의해 모이는 무리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무리들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가는 분명 따져야 한다. 일본의 우익단체를 좋은 무리라고 볼 수 없고, 미국의 인종차별자들을 용인하지 않듯 잘못된 무리는 부서져야 맞다. 그 시작이 무엇이었던지 간에 말이다.  


 권리는 주장하지만 의무는 지지 않으려 하는 자, 우리는 그런 사람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여성과 남성을 따지기 전에 우리는 모두 인간이며 동등한 존재이다. 단지 신체적인 차이가 있기에 그 역할이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신들이 그토록 증오하고 경멸하며 공격하는 대상이 결국은 자신들의 아버지, 남편, 아들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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