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르는 것은 힘들다. 
 입산을 할 때 즐거웠던 마음이 점차 없어진다. 숨이 가빠오르고 온몸의 근육이 고통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되면 머릿 속은 하나로 정리된다.
 '언제 올라가나'
 등산의 목적은 애초에 정상을 밟아보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괴로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대안으로 몸을 혹사시키기 위함이었다. 몸이 혹사 당하면 마음의 정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산티아고의 순례길이나 제주의 올레길처럼 말이다. 산티아고의 순례길은 가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지만, 제주의 올레길은 걸어봤지만, 생각의 정리나 마음의 위안을 얻어보지는 못했다. 단지 멋진 풍경에 일상의 벗어남을 만끽할 뿐이었다.
 등산도 결국 마찬가지였다. 복잡했던 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하염 없이 걷다 보면 복잡함을 정리할 수 있다고 하던데, 내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았다.
 하산을 하고 있는 사람과 마주치면 그들이 부러웠다. 언제 올라갔기에 벌써 내려오는 길일까.

 분명 정상을 정복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등산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음에도 때론 그들에게 힘들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는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숨을 고르고 힘들지 않은 척을 하며 지나치기도 했다.
 나의 삶은 나의 행로에 맞춰 살아가면 그만인 것을, 언제나 남과 비교해가며 뒤쳐졌다는 빅탈감에 괴로워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었지만, 그 나아짐은 보다 더 앞선 이들과의 비교로 지워졌다. 나는 그렇게 매일 괴로워했다.
 등산을 하며 쉼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그만 내려갈까’
 유혹은 점점 강해진다. 몸이 그만큼 힘들어지기에 마음은 쉽게 무너진다. 그래도 그 유혹은 견딜 수 있었다. 내 마음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다른 그 무엇도 내가 조절할 수 없었다.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내리거나, 잘 못 딛은 발이 접질러서 다치는 등 제어할 수 없는 환경적 요소는 무수히 많았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등산은 혼자서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 긴 시간 동안 함께한 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하산을 하고 있었다. 시작과 끝이 즐겁다. 그러나 혼자서 한 등산에서의 알 수 없는 개운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서 마음이 괴로울 때는 혼자가 좋았다.
 신기했다. 다리가 후들걸릴 정도로 힘들게 한 등산인데 마음 속에서는 개운함이 자란다. 포기하지 않고 정상을 밟았다는 성취감이 아니었다. 하산을 하면서도 사실 머릿 속은 오로지 언제 내려가나 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다 내려오면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음에도 좋았다.
 지금의 나이가 되기 전에는 등산이란 것을 정말 싫어했다. 지금처럼 등산을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등산을 하게 된 계기는 사람이 싫어서였다. 일에 치이고 가족에게 시달리다보니 혼자이고 싶었다. 차를 운전해서 한적한 곳에도 가보고, 풍경 좋은 장소도 가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분명 혼자인데 혼자가 아니었다.

 희한했다. 산에는 등산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분명 사람들 속에 있는데 나는 혼자였다. 고독감이란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혼자서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사람을 만나며 회복을 한다지만 나는 혼자 일 때 회복하는 성향이었다. 그것을 잊은 체 10년을 넘게 살다 보니 마음에 병이 들었던 것이다.
 정상에 올랐을 때 성취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볼 때면 자연에 대해 경외감마저 느낄 정도다. 그리고 이 높은 곳을 참고 견디며 올라온 자신을 다독인다. 어쩌면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나라는 인간에게서 하나라도 했냈다는 위로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등산을 하는 그 행위 자체에서 오는 치유는 없었다. 정상에 올랐다는 잠깐의 성취감, 하산을 마친 개운함. 모두 머리 속을 잠시 지나가는 미미한 감정의 파도일 뿐이다.
 다만 그 행위를 하는 그 시간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다.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나만의 시간.
 평일 일상에 찌들어갈 때면 날씨앱을 켜고 주말의 날씨를 확인해본다. 주말마다 등산을 오를 정도로 즐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등산의 행함을 날씨가 아닌 나의 선택으로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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