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vol.5


 리는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문학을 문학이 아닌 하나의 과목으로서 배웁니다. 그래서 가슴을 스며드는 시 한 편을 외우기 보다는, 기억 속에 남을 소설 한 편을 읽기보다는 시와 소설이 만들어진 시대배경과 관점, 묘사, 암시 등등 문제로서의 가치로 접근해버렸습니다. TV나 영화 속처럼 국어선생님이 창가를 바라보며 시와 소설을 읽는 건 오히려 흔한 장면이 아닌 것이죠. 문제지를 펴고 시의 전편도 아닌 어느 한 부분만 보면서 이 부분이 문제로 가장 많이 나온다고 배우고, 소설의 한 대목만 보여주면서 소설의 줄거리와 결말을 배웁니다. 박경리의 '토지'를 짤목한 지문에 나온 것으로만 배운다는 것이죠. 

 

 고등학교 시절, 언어영역의 점수를 높이기 위해 책을 읽지는 않았습니다. 그럴바엔 문제지를 하나 더 푸는게 휠씬 나을테니까요. 정규 수업이 모두 끝나고 일명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너무 흠취한 나머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물론, 담임이 나중에 발견하고, 수능점수나 올리라고 욕을 먹었죠. 하지만 지금 저의 머릿 속에 남아있는 것은 언어영역의 문제들이 아니라, '토지' 속의 한국인들이 일제 시대에 겪었던 서러움과 시대적 아픔이었고, '태백산맥' 속의 대한민국이 이념이 달라 서로 싸울 수밖에 없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겪었을 아픔이었습니다. 

 

 문제지에서 배우는 그런 것이 아니라, 진정 문학에서 배우고 느끼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라는 영역에서 문학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문제를 내야 하고, 그런 문제를 내기 위해서는 공인된 관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물론, 이 점이 문학을 더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데도 용이하기도 하지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왜 옥희의 입장에서 소설을 써 내려갔는지를 알게 되면 소설이 나온 시대적 상황과 잘 맞물려가면서 더욱 작품에 대해 이해력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문학을 계산적이고 합리적으로만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시인과 소설가가 언제나 시대를 생각하고, 문학적 용어들이 쓰이도록 작품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단지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만들어졌기에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고 보여질 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영화를 보면 평론가들이 내린 평점과 관람객들이 내린 평점이 상이하게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평론가들은 영화를 계산적이고 합리성을 가지고 보려한 반면에, 관람객들은 영화 자체를 보면서 재미를 느끼려 하기 때문입니다. 


 문학에서 의미를 찾아낸다고 그것이 유식의 증거라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슴에 남는 문학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문학을 진정 느끼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