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vol. 11
동물을 키우는 것은 사랑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사람은 식량으로서 동물을 기르고 도축하여 먹는다. 불안정한 수렵의 행위에서 변화한 것으로 안정적인 식량의 공급원이다. 그리고 전혀 다른 목적으로 애완동물을 기른다. 이를 요새는 반려동물이라고 한다.
사회는 점점 발전한다. 사회적 규범은 시대에 맞춰 변화한다. 사회는 발전하지만 규범은 변화한다. 발전한다는 표현이 맞지 않는 것은 그 시절에 맞다고 생각한 규범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며, 변화된 규범 역시 언제나까지나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을 돈을 주고 사고 팔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는가. 말도 안되는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은 그런 존재가 아닌 것에 사회적으로 이미 합의를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물은 어떠한가. 동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돈을 주고 사고 판다. 식량의 목적을 갖고 있는 동물은 당연히 경제적 관념이기에 논외로 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랑으로 키운다는 반려동물이 어째서 돈을 주고 사고파는 것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가. 그건 아직도 반려동물의 의미보다는 애완동물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이다. 마음에 들면 키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면 되는 그런 존재.
사람들에게 묻는다. 동물원에 왜 가느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을 좋아해서 보고 싶어서 간다고 한다. 동물을 좋아한다면 동물원에 가는 것을 꺼려야 맞다고 본다. 동물원의 그 어떤 동물이 자의로 그 동물원의 좁은 우리 속에서 살고 싶어할까. 더구나 자신들이 살던 기후도 아닌 곳에서 말이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다 같은 말을 한다. 자신은 동물을 사랑해서 키운다. 그런데 유기된 동물은 매해 발생하고 그 수는 더 많아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유기된 동물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을까.애완동물을 키우는 모든 사람이 동물을 버리지는 않다. 하지만 동물을 버린 사람은 동물을 키웠던 사람밖에 없다.
생명이 담긴 존재를 쉽게 봐서는 안된다. 사람이라고 해서 동물의 생명을 경시할 권리는 그 어디에도 없으며, 마음대로 취하고 마음대로 버리는 것은 더욱 없어져야 한다.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애완동물의 경제적 요소들이 사라져야 한다. 돈을 주고 사고파는 행위가 없어진다면, 남은 건은 기존 동물들로 국한된다. 돈이 되지 않으면 공급은 사라진다. 하지만 언제나 동물을 기르고 싶은 수요는 남는다. 그 수요는 남은 개체로 대신한다. 그리고 그 개체만으로 종을 존속하면 된다. 그렇지 않은 종은 도태될 것이고 그것은 자연의 이치와 다르지 않다.
또한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은 허가제가 되야 한다. 동물을 과연 기를 수 있는 지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키워서는 안된다.
교양은 지식이다. 지식은 끊임없는 배움에서 나온다. 사람이 길가에서 대변을 싸고 소변을 싼다면 어떠한가. 왜 애완동물이 하는 행위에 대해서 불쾌하지만 용납하고 있는가. 하물며 사람을 공격하는 동물까지도 용인한다. 어린아이를 공격하는 동물을 막아주다가 죽이면 그 동물 주인은 왜 그에게 보상을 요구하는가. 오히려 미안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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