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vol.4>

 SNS(Social Network Service) 하면 떠올려지는 대명사, 트위터, 페이스북. 기타 여러 SNS 들이 있습니다만 가장 먼저 떠올려 지는 것은 앞의 두 가지 일 것입니다. 사실 SNS는 상당히 많은 서비스를 내포하고 있는 용어입니다. 지금 제가 작성하고 있는 블로그도 그 중 하나이니까요. 따라서 SNS라는 용어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다만 사람들에게 크게 와닿아지는 것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국내에서는 3~4다리만 거치면 모두가 일촌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싸이월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파도가 밀어닥치죠. 바로 '스마트폰'의 출시였습니다. 스마트폰은 정말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토록 열광적이었던 싸이월드가 내리막길을 치달아 가는 것도 모바일화 되고 있는 대세를 발빠르게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뒤늦게서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시장을 섭렵하고 나서였죠. 

 페이스북도 사실상 트위터보다는 하위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SNS의 대명사는 분명 트위터였죠. 마이크로블로그의 일종으로 개인사를 단 140자내외로 작성하여 팔로워들간에 소통을 한다는 것. 정말 혁신이었습니다. 뉴스보다도 빠른 소식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소식 등등 트위터는 스마트폰 속에서 일대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트위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팔로우할 대상을 찾아 나섰죠. 팔로우할 대상은 무긍무진했습니다. 유명인들의 트위터 아이디는 검색만 하면 찾을 수 있었고, 그들을 팔로우 한다는 것은 뭐랄까 친분을 쌓는다는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트위터의 주요 팔로우 대상은 연예인이었을 겁니다. 지금이라고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유명연예인에서 내임벨류를 가진 대상으로 좀 더 확대가 되었을 뿐이니까요. 

 2년 전 트위터를 대상으로 공부를 할 때만 해도 트위터의 간편한 팔로우는 신기할 정도로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상대방이 뿌리는 트윗을 원한다면 누구나 볼 수 있기에 그 파급력은 더욱 확산될 것이고, RT를 통해 정보의 힘은 더욱 증가될 것이라고 보왔죠. 

 그러다가 페이스북이 등장을 합니다. 페이스북은 트위터는 많이 달랐습니다. 상대방의 소식을 보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친구의 관계를 서로 승낙해야 되죠. 싸이월드의 일촌관계와 비슷한 개념이라서 접근하는데 어렵진 않았습니다. 따라서 페이스북도 빠른 시간동안 많은 회원수를 거느리게 되고 공유하는 정보가 더욱 커졌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트위터는 일종의 정보를 확산시킨다면 페이스북은 정보보다는 일상을 표출한다고 보면 되는 것이지요. 여튼 서로의 장단점이 있기에 두 서비스가 모두 인기를 지속적으로 가져갈 것이라고 보왔죠.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트위터의 트윗라인은 점차 줄어들가고, 페이스북은 급속도록 증가되었습니다. 페이스북은 앞서 말한듯이 일상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지인들과의 관계 형성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그만큼 많은 뉴스피드를 생성하게 되었죠. 따라서 페이스북 이용률 증가에 따라 트위터의 이용이 줄어들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을 수 도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트위터는 분명 무언가 어긋나고 있습니다. 팔로우라는 제도가 계속 퍼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지점을 끝으로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물망처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얽히고 얽혀서 점점 거대화 되기는 했지만, 결국 같은 그물망 속에 멈춰버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트위터 속의 정보는 사실 상 자신이 보고자 하는 정보만 돌아다니고 있는 셈입니다. 자신들이 보고 싶어하는 내용만이 존재하다 보니 왜곡된 정보도 의심조차 하지 않고 RT를 누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RT를 누르게 되죠. 그러다보면 그 잘못된 정보가 어느새 진실이 되어 사람들의 머릿 속에 각인되어 버립니다. 사람의 머릿 속에 한 번 각인된 정보를 다시 바꾸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왜냐면 그 정보가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설득시켜야 하기 때문이죠. 단순합니다. 누군가를 미친 사람이라고 판단해버린 사람에게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근거를 가져와야 되게 됩니다. 정말 진실을 거짓이 뒤덮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트위터는 이렇게 왜곡된 진실을 퍼다나르고,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만을 습득하는 커다란 우물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번 총선거에서도 그 점이 더욱 부각되어왔습니다. 진보는 진보끼리, 보수는 보수끼리 자신들의 정보를 공유합니다. 그리고서는 반대편에게 독설을 가합니다. 반대편은 보지도 않는데 말이죠. 

 현재의 트위터를 이렇게 만든 것은 사용자들의 너무도 쉽게 생각하는 것 때문입니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RT를 했다면 그 책임이 분명 그들 모두에게 있을텐데, 최초 유포자에게만 그 잘못이 있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그저 정정된 트윗을 날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말 큰 착오입니다. 속담에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어담을 수 없다 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말이란 생각을 거듭하고 하란 것이죠. 트위터의 RT는 그렇게 쉽게 눌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 정보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으며, 그에 대한 책임이 있을 때 행하여야 합니다. 물론 트윗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 작은 우물이라면 차라리 자신의 세상이 좁다는 것을 빨리 알아챌 수 있기 때문에 나을 지도 모릅니다. 트위터 속의 세상은 커다란 우물 속과 같습니다. 자신이 우물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노력은 바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믿음과 책임 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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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로에게 중도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생각을 여러 입장에서 하려고 노력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 이름도 다차원적 생각의 발악이라고 지었던 거죠. 하지만 저도 인간인지라 제가 생각하고 싶은 방향대로 생각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발악이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중도의 입장을 고수하려고 노력합니다. 

 따라서 정치적 색깔을 띄는 내용은 포스팅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일련의 사건들이 결국엔 포스팅하도록 만드네요. 사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라는 제목으로 계속 써내려가는 것은 단지 그 때 당시의 제 생각을 정리한 에세이 같은 형식의 연재물입니다. 그러다 보니 때에 따라서 내용의 전반적인 흐름이 비슷하면서도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SNS와 스마트폰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루는데, 이번 역시 그와 관련되지만 약간은 정치 이야기를 첨부하게 되었습니다. 

 4월 11일 총선거날, 선거 결과야...참...말이 안나오는 결과였습니다. 그렇게 국민들 스스로가 외치고 불만을 가지고 있던 FTA를 통과시킨 여당이 여전히 대한민국 제1당의 힘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막아서야할 야당들은 정확한 지략도 없이 스스로를 와해시키고 변절시키고 결국엔 겨우 국민들의 깨우친 분들 덕분에 서울에서나마 변화의 조짐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큰 변화를 염원했던 국민들은 국민들 스스로가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결과를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투표율 50%대...국민 중 2명 중 1명만이 투표에 참여. 자신의 권리마저 저버린 시민의식. 진보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참혹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일은 선거가 끝나고 다음이었습니다. SNS를 통해 퍼져나간 20대투표율에 대한 비난, 지역에서의 일방적인 선거결과에 대한 비난 등은 가히 팀킬이라 부를만 했습니다. (여전히 트위터 상에는 근거도 없는 이야기가 진실이 되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제발 RT를 하기 전에 이 트위이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부터 판단하세요. 무작정 퍼다날린 당신의 선택이 망국의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아직 세대별 투표율이 정확히 나오지도 않은 판국에 누군가가 지레짐작하여 퍼다 날린 정보를 믿고 20대를 싸잡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 등록금은 천만원을 넘겨봐야 20대가 정신을 차린다.

 - 무한도전이 종방되야 방구석에서 일어나서 투표하러 나간다.

 - 시위는 할 생각도 하지 말아라. 등등

 진보성향의 사람들은 선거결과의 불만을 토로할 대상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때마침 그들의 표적이 될만한 상대를 찾게 되었고 주 대상으로 20대를 골랐던 것이죠. 네, 저도 20대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선, 총선거, 지방선거 등등 투표를 빠진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20대 대부분은 투표권을 행사합니다.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20대들은 투표를 안하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부류가 있기도 하죠. 그러나 일부입니다. 투표를 못한 사람 중에는 어쩔 수 없이 못하게 된 사람도 꾀나 많습니다. 휴일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모두가 쉬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묻고 싶습니다. 

 지난 세월동안 20대의 투표율이 높았던 적이 있나요?

 당신들은 20대를 거치지 않고 바로 30대나, 40대의 나이를 드신건가요?

 그렇습니다. 당신들도 예전에는 분명 20대였고, 투표율이 낮은 세대를 지나왔습니다. 20대가 투표율이 낮은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 말고도 많습니다. 

 10대 시절, 정치에 관심을 가지도록 기성세대가 이끌어주었나요? 정치에 관심 갖게 만들기 보다는 오로지 공부에만 열중하도록 하게 만든 것이 이 사회가 아니었습니까. 그런 상태의 10대 시절을 보낸 이들이 20대가 되었다고 갑자기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투표권을 행사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0대 시절부터 올바른 이끌림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선거구에 나온 사람들 중에 누가 올바른 사람인지 알 수가 없기에 그 중 누군가를 뽑긴 해야 되지만 자신이 잘못 선택해서 투표를 행사하면 오히려 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네, 물론 어떤 논리를 갖다 붙여도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사람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비난을 하기 전에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비난은 정말 답이 없습니다. 왜냐면 대화가 되질 않거든요. 애초에 이유가 없으니까요. 

 아직 정확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20대의 투표율은 낮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투표율이 낮다고 해서 무작정 비난하고 욕할 것이 아니라 이들 세대가 왜 낮을 것인지를 생각하고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올바른 생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울러, 지역적으로 상식적으로 뽑힐 이유가 없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지역민들이 후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당을 먼저 보기 때문입니다. 후보라고 나오는 사람을 지역민들이 언제나 알고 있을 턱이 없으니까요. 아직은 대한민국의 선거는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닙니다. 조금씩 높여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서로에게 비난하고 욕하지 마세요. 이끌어 주세요. 보다 올바른 길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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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근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지하철4호녀. 비단 이번만의 사건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터진 채선당 사건. 그리고 과거의 xx녀, xx남 등으로 불리며 누리꾼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물론 이같은 사건들이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사는 사회이기에 일반인의 시간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이들은 언제나 사회 속에 존재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 더욱 이같은 일들이 이슈화 되는 것은 왜 일까? 그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통신기기의 발달과 인터넷의 보급이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과거 인터넷은 극히 소수만이 쓰는 온라인상의 가상공간으로만 이해되었다. 그러나, 각 가정마다 개인PC가 생기고 인터넷이 보급됨에 따라 사람들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규합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를 더욱 가속한 시킨 것은 통신기기이다. 통신기기는 개인들간의 통화를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최근 스마트폰 등은 무선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원할 때 인터넷을 할 수 있게되었다. 이에 따라 더 이상 사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존하는 사회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자,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공존이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바로 공간의 제약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소식이 전달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따라서 그 소식이 전해지는 과정이 길었고, 내용의 정확성도 많이 떨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현장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어딘가에서 사건이 터지고 이에 대한 온라인 업로드가 이루어진다면 누구와도 공유가 가능하다. 

 1. 서두에서 말한 사건 등이 터진다. 
 2. 누군가가 그 모습을 SNS에 찍거나 올린다. 
 3. SNS의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가 이뤄진다. 
 4. 온라인기자들에 의해 기사화 된다.
 5. 전국의 사람들이 알게 된다.

 이 과정이 걸리는 시간은 빠르면 채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사건에 대해 한 목소리로 비판을 쏟아낸다. 사건의 전파에 있어서 신속성은 확보가 되었다. 그러나 정확성은 확보되지 못했다. 그렇다고해서 위의 대상들을 두둔하고 싶진 않다. 다만 이러한 사건들이 언제나 옳은 결과만을 낳았던 것은 아니다. 일명 '마녀사냥'이라 불리며 아무런 잘못도 없던 일반인이 되려 피해를 보고 사회 속에서 매장되어버린 것이다. 옳지 못한 행동을 한 대상들에게 비판을 가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다. 그러나 정확한 판단이 결여된 비판은 오히려 사회악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선동되기 쉽다.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가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그 무리 속에 껴있는 사람은 당연스레 그 무리의 의견과 동일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 어떤 사건이든 하나의 단편만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사건 속의 시작점은 무엇이었고, 과정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비판하기 전에 알아야 필요성이 있다. 특히 사건 속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자신이 직접 목격한 듯이 외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그런 이들이 바로 선동을 이끄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현재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SNS의 발전은 놀라울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우리는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행동에 제약을 줘야 한다. X의원의 어처구니 없는 주장에 모두가 의심을 가지게 되었지 않는가, 우리가 얼마나 거짓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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